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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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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사람이다


인권, 그리고 민주주의에 대한

가장 뜨거운 이야기



고상만 지음│148*216mm│304쪽│사회/인권2014년 7월 2일 발행 

15,000원│ISBN 979-11-85494-49-4 (03330) 



"사회적 약자를 보듬는 굳센 희망!"

인권운동가 고상만의 희망 분투기!


곽노현 교수, 조국 교수, 장호권 선생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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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소개


사회적 약자를 보듬은 굳센 희망!

인권운동가 고상만의 희망 분투기


이 책은 인권운동가 고상만이 민주화 투쟁과 인권 유린의 현장에서 온몸으로 기록한 르포다. 치열한 민주화 과정에서 희생당한 이들의 참혹한 사연과 더불어 빈민, 노동자, 장애인, 군인, 학생, 성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의 고통을 뜨거운 언어로 증언한다. 이 책에서 그는 민주주의와 인권 현장에서 만나 그의 심장에 남은 사람들을 호출하여, 그들의 삶과 투쟁을 기록한다. 객관적 사실을 적시하며 정황에 따른 합리적 추론을 곁들인 그의 글쓰기 방식은, 독자로 하여금 그 지극한 슬픔에 동조하고 분노하고 울게 만든다. 바로 진실의 힘이 발휘되는 순간이다.     


고상만은 대학생 시절 함께 학생운동을 하던 동료가 의문의 죽음을 당하고, 그 죽음이 어떻게 왜곡되는지를 지켜보면서 ‘사회적 약자에게 힘이 되는’ 인권운동가의 길을 걷기로 결심한다. 이후, ‘유서대필 조작 강기훈 무죄 석방 공대위’를 시작으로 직업 운동가의 삶을 살았다. 특히 ‘대통령 소속 의문사 진상위원회’에서 재야인사 장준하 선생 사건의 조사팀장으로,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 등에서 조사관으로 활동하며 독보적인 성과를 거뒀다. 이 책은 ‘인권운동가’와 ‘조사관’이란 이름으로 참혹한 비극의 현장에서 써 내려간, 고상만의 희망 분투기다. 


인권은 좌우 이념과 사상을 떠나 모든 사람들이 동의하는 보편적이고 근원적이며 구체적 가치다. 그러나 군부권력이 독재하던 지난 시절과 신자유주의와 결합된 자본권력이 지배하는 오늘날, 사회적 약자의 무참한 슬픔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인권은 가장 평범하고 흔한 단어가 되었지만, 그 가치는 더 이상 보편적으로 적용되지 않는다. 저자 고상만의 투쟁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고되고 고통스럽더라도, 그는 이 투쟁을 멈출 생각이 없다. 왜냐면, “진실은 더디 오지만 반드시 정의를 찾아온다”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언제나 사람을 향한다.   


진실은 더디 오지만 반드시 정의를 찾아온다


이 책의 1부 “민주주의란 무엇인가”는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고 이소선 여사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비루한 노동현장에서 가장 뜨거운 죽음으로 투쟁했던 아들의 곁에 어머니 이소선 여사가 있었다. 아들의 죽음 이후, 이소선 여사는 모든 노동자들의 어머니로 여생을 살았다. 어머니를 통해 전해 듣는 전태일 열사의 마지막 유언은 여전히 ‘다시 싸워야 할’ 미완의 소명으로 남아 있다. 그 밖에도 1980년 5월 광주에서 희생당한 최미애 씨의 사연, 인혁당 재건위 희생자 8인의 명예회복을 위해 헌신한 고 김승훈 신부 이야기, 저자가 직업 운동가로 나선 직후 처음 맡았던 사건인 ‘강기훈 유서 대필 조작 사건’의 전모, 한국전쟁 고양 금정굴 사건 희생자와 그 후손들의 이야기, 고 김근태 의원이 평생 감당해야 했던 모진 고문의 상흔, 고 강금원 회장의 아들이 전하는 노무현 대통령과 강금원 회장 이야기 등이 담겨 있다. 


2부 “인권 현장 이야기”는 고아로 자라 1급 장애인이 된 어느 노점상이 노점 철거 현장에서 죽음을 당하게 된 사연을 시작으로, 이지문 중위, 장진수 전 주무관, 권은희 전 경정 등의 양심선언자 이야기, 군대에서 사망한 군인들과 그들 가족의 겪고 있는 억울한 사연, 영화 <이태원 살인 사건>으로 세간에 알려진 ‘이태원 조중필 살인 사건’의 전모, 성소수자와 학생인권 이야기 등이 빼곡히 담겨 있다. 


3부는 저자를 인권운동가의 소명으로 이끌었던 학생운동 동료 김용갑의 이야기를 비롯하여, 치열한 인권운동가의 삶을 살고 있는 저자의 개인적 사연을 엮었다. 









추천의 말


고상만은 치열한 인권운동가이자 빼어난 르포문필가다. 이 책에서 그는 민주주의와 인권 현장에서 만나 그의 심장에 남은 사람들을 불러낸다. 그분들의 삶을 중심으로, 한 시대의 불의와 그에 맞선 투쟁을 종횡으로 엮어낸 그의 글은 하나같이 현장감이 넘치고 술술 읽힌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지 않고 사실이 말하게 하는 미덕을 가졌다. 고상만의 민주주의와 인권 현장에는 늘 진실한 사람이 있다. 통념의 한계를 넘어서는 사람이 있다. 다시, 사람이다.

— 곽노현, 전 서울시 교육감, ≪징검다리 교육감≫의 저자


우리는 대의민주주의를 위시한 정치적 민주화의 성과를 누리고 있지만, 이것이 누구의 헌신과 희생 덕인지 종종 잊는다. 이미 ‘선진국’이 되었다는 요란한 자랑에 가려진 사회경제적 소수자와 약자의 고통을 외면한다. 저자는 자신의 온몸으로 경험한 사건을 중심으로 우리 사회의 민낯을 보여준다. 민주주의와 인권이 세상의 핵심 운영원리로 자리잡아야 한다는 저자의 굳센 신념, 이를 실현하기 위하여 투철한 인권운동가로 살아온 그의 뜨거운 열정에서 우리 사회의 희망을 찾을 수 있어 기쁘다.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왜 나는 법을 전공하는가≫의 저자




이 책은 기득권과 권력을 누리고 있는 이 나라의 각종 부정세력들이 저지른 잔인한 범죄를 직접 조사하고 또 체험한 사실을 충실히 증언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또한 이 책을 통해 자신의 불이익을 감내하며, 오로지 이 나라의 감춰진 어둠의 역사를 제대로 알리고자 분투하는 인권운동가의 삶이 어떠한지 알 수 있습니다. 부디 이 책이 많은 독자들에게 읽히기를 간절히 희망합니다. 그리하여 어떤 불의한 세력들이 이 나라의 민중들을 이렇듯 아프게 만들었는지, 그리고 어찌하면 제대로 된 역사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장호권, 월간 <사상계> 대표, 고 장준하 선생 장남








차례


서문


1부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1. 전태일 열사 어머니, 이소선이 말하다 

2. 80년 5월 광주 희생자, 최미애의 묘 앞에서 울다

3. 민중의 벗 김승훈 신부님, 잊지 않겠습니다 

4. 대한민국 사법부의 부끄러운 판결, 강기훈 유서 대필 조작 사건

5. 어떤 이념도 인간의 존엄성보다 우선할 수 없다

_한국전쟁 고양 금정굴 사건

6. 김근태가 큰 소리로 연설할 수 없었던 까닭은? 

7. 노무현과 강금원, 두 분 인연 원망하지 않습니다

8. 의심할 자유 보장, 그것이 진짜 민주주의다


2부 인권 현장 이야기

9. 당신의 이름을 세상에 꼭 남기겠다 

_어느 빈민 장애인 노점상과의 약속

10. 윤성두 중위, 미안합니다 

_ 고난받는 이 땅의 양심선언자들을 위해

11. 헌병대 수사관의 폐륜 문자, 국방부 사과에도 어머니는 왜 울까 

_“군 사망 사고 진상 규명 특별법”을 제정하라

12. 재미 삼아 죽임당한 우리 아들 한 좀 풀어 주세요 

_여전히 불평등한 소파 협정과 ‘이태원 살인 사건’

13. 다르다고 틀린 것이 아니다 

_성 소수자 이야기

14. 어른은 그러면 안 되고 학생은 그래도 되나 

_학생 인권 이야기


3부 진실은 더디 오지만 반드시 정의를 찾아온다

15. 김용갑, 내 청춘의 또 다른 이름 

16. 이 말 한마디 하려고 공무원 사표 냈습니다 

17. 감옥으로 찾아온 그녀, 장경희









서문 중에서 


마지막 숨을 몰아쉴 때,

부끄럽지 않기를…


다시, 사람이다≫ 역시 이전에 냈던 책처럼 누군가의 아프고, 고통스러운 이야기 중 일부다. 내가 인권 운동 현장에서, 또는 그 언저리에서 일하며 만난 누군가의 울분과 서러움을 대신하여 쓴 글이 대부분이다. 생각해 보면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기준은 ‘사람’이었고, 나는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제3자인 누군가에게 보다 설득력 있게 전달하고자 노력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책에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최대한 많이 담으려 노력했다. 


책 제목 ≪다시, 사람이다≫처럼 나는 우리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기준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 어떤 제도나 이념도 사람을 넘어설 수 없다. 그래서는 안 된다. 그런데 우리는 때때로 이 상식을 망각한다. 어떤 이념과 주장이 나와 다르다고 해서 다수의 사람들이 소수를 유린하고 심지어 죽이는 것조차 서슴지 않는다. 이 책 내용 중 일부인 한국전쟁 당시 고양 금정굴에서 벌어진 집단 학살의 야만과 비극을 쓰며 나는 이 생각을 참 많이 했다. 제도와 이념을 만든 것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라는데, 그 제도와 이념을 근거로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죽일까. 또, 사실이 아닌 줄 알면서도 자신의 직위와 직책을 보전하고자 누군가를 억울하게 하는 부도덕한 우리 사회 일부를 보면서 절망하기도 했다.


이 책에 담긴 이야기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우리는 그런 잘못된 일들과 싸워야 한다. 나는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함께 싸우자고 말하고 싶었다. 그것이 이 책의 메시지다.









책 속으로


> 아들 전태일 열사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어떤 것이었나요?

>> 아까 이야기를 하다가 말았는데 내가 그 주사를 맞히려고 이리저리 부탁을 하고 있는데, 태일이가 나를 막 부르는 소리가 들리더라고. 그래서 갔더니 하는 말이 “어머니, 사람이 3도 화상을 입어도 살지를 못하는데, 나는 더 빨리 분신을 하려고 옷 안에 솜을 넣고 거기에도 석유를 부은 후 불을 댕겼는데 제가 어떻게 살 수 있겠어요. 그러니 주사나 약은 필요 없으니 나와 함께 말이나 해 주세요” 하는 거야. 그래 내가 “그럼 우리 기도를 하자” 하면서 성경책을 태일이 머리맡에 두고 태일이 가슴에 내 손을 얹고 기도를 시작했어. “하나님. 사람의 생명을 죽이고 살리고는 하나님의 뜻인데, 우리 태일이를 하나님의 뜻대로 하십시오”라고 기도했어. 잠시 후에 태일이도 기도를 하더라구. “자살을 한 사람은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하는데 나는 노동자를 위해서 죽으니 하나님께 구원을 받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그러더니 내게 “어머니는 예수 믿지요? 예수를 믿으면 실천하는 기독교인이 되어야 합니다” 하는 거야. 또 “물질이나 욕심에 물들면 안 돼요”라고 하면서 저는 어머니를 믿는다고 말하더라구. 그러더니 병실 밖 복도에 있는 공장 친구들을 좀 불러 달라는 거야. 그런데 병원에 와 있던 친구들은 이미 경찰이 다 연행해 가 버리고 단 두 명만 어떻게 병원에 남아 있더라고. 태일이가 그 애들에게 당부하는 말이 “너희들은 부모에 효도하고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하더니, “그런데 살아가면서 여유가 있으면 나 대신 우리 어머니에게 효도를 해 달라”고 부탁을 하더라고. 그 말이 지금도 가슴이 아파.

> 전태일 열사가 특별히 어머니께 드린 말씀은 없었나요?

>> 나한테는 이런 말을 했는데 지금도 그 말이 생생하게 기억이 나거든. 태일이가 “내가 죽어도 섭섭하지 않은 말이 있다”고 하면서 “지금 70년대는 우리 노동자가 못살고 있는데, 나는 80년대가 되어도 우리 노동자는 못살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더라구. ‘빈익빈 부익부’가 계속 이어질 것이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은 계속 가난하고 부자는 계속 부자로 산다는 거야. 그래서 회사 사장은 그 아들에게 계속 사장 자리를 물려줄 것이고, 폐병 걸린 어린 동심에게는 여전히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는 아픔 역시 이 땅에서 계속될 거래. “그러기에 나는 이 독재와 암흑에 맞서 싸우기 위해서는 노동자가 단결을 해야 하고, 그 속에서 많이 배운 지식인과 학생들이 함께 합심을 하여 싸워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하면서, 나에게도 “어머니도 같이 싸우셔야 합니다. 싸우실 수 있죠?”라고 말하더라구. 그래서 내가 “그래”라고 대답을 하는데 목이 잠겨 말이 나오지 않아 소리가 작았거든. 그랬더니 “목소리가 왜 이렇게 작아요? 할 수 있죠?”라고 물어, 내가 다시 억지로 힘을 내서 “그래”라고 말했어. 그러니까 태일이가 하는 말이 “나는 어머니를 보고 배우며 연구해서 실천했는데, 만약 어머니가 하지 않으면 어머니는 나를 위선으로 키운 것”이라고 하잖아.

_1. 전태일 열사 어머니, 이소선이 말하다, 27-29쪽


2012년 10월 19일, 검찰의 항고 후 만 3년이 지나도록 이 사건 재심 개시 여부를 결정하지 않았던 대법원이 각계의 항의가 빗발치자 마침내 재심 개시를 결정했다. 그해 12월 20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유서 대필 조작 사건에 대한 재심 첫 공판이 열린 후 다시 기나긴 2년 2개월이 지나가던 2014년 2월 13일,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역사적인 선고를 내렸다. 결과는 강기훈 ‘무죄’였다. 23년 만에 찾은 진실이었다. 신문과 방송은 그때, ‘피도 눈물도 없이’ 동료에게 잘 죽으라고 유서를 써 줬다며 강기훈을 악마로 보도하더니, 이번엔 ‘23년 만에 무죄 선고받은’ 강기훈의 심경을 보도한다며 야단법석을 떨었다. 그러나 강기훈은 단 한 번웃지도, 울지도 않았다. 다만 한마디 했다.

“검찰이 어떤 형태로든 유감을 표시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이 말도 안 되는 조작 사건으로 자신이 잃어버린 23년에 대해 가해자인 검찰이 사과해 달라는 요구였다. 처음 이 사건을 조작한 1991년 5월 그때로 되돌릴 수 없다면 유감 표시라도 해 달라는 뜻이었다. 강기훈이 잃어버린 것은 23년 세월만이 아니었다.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졌다. 부모님은 아들을 믿었지만 유서 대필범으로 세인들의 비난을 받는 아들을 보며 세상을 떠났다. 정상적인 직장 생활은 고사하고 간암 말기로 건강은 철저히 무너졌다. 행복한 가정이 유지되는 것은 불가능했다. 다른 누구였다면 무죄 선고를 받은 순간 땅을 치며 쌍욕이라도 했을 텐데 강기훈은 그러지 않았다. 자신에게 자살 방조범이라며 유죄를 선고한 1심 재판부를 향해 “이 거지 같은…”이라고밖에 분노를 표할 줄 몰랐던 강기훈다웠다.

_4. 대한민국 사법부의 부끄러운 판결, 강기훈 유서 대필 조작 사건, 83-84쪽


어느덧 이 끔찍한 일이 벌어진 지 반백 년이 훌쩍 지나가고 있다. 그동안 적지 않은 일들이 있었다. 2007년 진실화해위의 진실 규명 결정으로 진실이 밝혀졌고, 그에 따라 유족들이 경찰의 불법 행위에 대한 책임을 묻고자 제기한 국가 상대 민사소송에서 서울고등법원이 2012년 8월 23일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국가기관과 법원이 금정굴 희생자들과 유족들에게 그 억울함을 분명하게 인정한 것이다.

하지만 현실로 돌아오면 실정은 다르다. 진실화해위는 금정굴 사건 희생자 유족들에 대한 국가 차원의 공식적 사과, 임시 보관 중인 유해 영구 봉안, 이들을 추념하는 고양시 평화 공원 설립, 위령 시설 설치 등을 국가와 해당 자치단체 등에 권고했다. 하지만 이 같은 권고는 2014년 4월 현재까지도 전혀 이행되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영원히 불이행될지도 모른다. 왜 그런가.

1950년 10월 당시 금정굴에서 가해한 이들이 여전히 반성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행위가 명백한 잘못임을 인정하는 국가기관의 결정과 법원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희생자들과 유족들에게 사과는 고사하고 밑도 끝도 없는 ‘빨갱이’ 매도를 거듭하고 있다. 지난 2010년 지방선거 당시 야권 연대 단일 후보로 선출된 시장과 ‘금정굴 희생자를 위한 평화 공원’ 건립을 공약했던 일부 고양 시의원들 역시 임기 내 자신들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억울한 피해 유족들의 한은 또 그만큼 쌓여 가고 있다. 도대체 언제 이 문제가 해결될까. 

이념 갈등으로 일어난 한국전쟁 중에 빚어진 야만은 결코 되풀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 어떤 이념도 인간의 존엄성보다 우선할 수 없다. 그렇기에 나는 수백억 원을 들여 웅장하게 지어 놓은 서울 용산의 ‘전쟁기념관’보다 ‘고양 금정굴 평화 공원’을 만드는 것이 더 시급한 일이라고 주장한다. 전쟁을 기념한다는 발상 자체가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싸우고 죽이는 것을 기념하여 무엇을 어쩌자는 것인가. 나는 전쟁을 통해 평화의 소중함을 되새기자는 말장난보다 실제로 평화가 얼마나 소중하고 중요한지를 후세 사람들이 기억하기를 바란다. 전쟁은 사람을 죽이고, 평화는 인류를 구한다. 전쟁 중에 억울한 죽임을 당한 희생자들을 기억하며 그 야만을 반성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선택해야 할 진짜 ‘평화를 위한 교육’이다. 이것이 평화를 위한 첫걸음이 되어야 한다. 1950년 한국전쟁 중에 숨진 고양 금정굴 희생자 고산돌 씨를 비롯한 모든 이들을 추모하며, 또한 가족을 잃고 여전히 고통스럽게 살아가고 있는 그 후손들의 평화를 기원한다.

_5. 어떤 이념도 인간의 존엄성보다 우선할 수 없다, 101-102쪽


장애인 노점상이었던 최정환의 분신 사실이 알려진 후 노점상 연합회와 장애인 관련 단체는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이어 최정환이 중환자실에 입원한 서울성모병원에서 ‘노점상 생존권 보장’과 ‘장애인 생계 보장’을 요구하며 연일 항의 집회를 열었다. 내가 최정환을 찾아간 때가 그 즈음이었다. 분신 사건이 있고 이틀이 지난 3월 10일경, 나는 온몸을 흰 붕대로 칭칭 감은 채 검은 호빵처럼 전신이 부풀어 있는 최정환을 중환자실에서 마주했다. 그 참담한 모습에 무슨 말을 어찌 꺼내야 할지 몰라 난감하기만 했다. 그때였다. 심한 화상으로 형편없이 구겨진 작은 눈을 억지로 뜨며 최정환은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 정말 어찌해야 할지 몰라 안타깝던 그 순간, 나는 그의 눈물을 보았다. 이 세상에 태어나 겪은 온갖 서러움과 울분과 슬픔을 말하려는 듯 그 작은 눈에 가득 고인 듯하더니 이내 흘러내리는 눈물을 나는 너무나 충격적인 느낌으로 바라보았다. 그 순간, 나는 아무 말이라도 해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얼결에 말해 버렸다.

“많이 힘드시죠. 지금 밖에서는 선생님의 안타까운 사연을 알게 된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고 있습니다. 하루빨리 건강을 되찾으셔서 일어나 세요. 그러면 다 잘될 겁니다.”

그 순간이었다. 최정환이 거칠게 숨을 몰아쉬기 시작했다. 그가 뭔가 간절히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처럼 처절하게 몸부림을 치며 조그맣게 이상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나는 무슨 일이 날까 싶어 걱정도 되었고, 또 그런 상황에서 내가 계속 옆에 있는 것이 과연 그에게 좋은 것일까 염려도 되었다. 결국 나는 서둘러 “나중에 다시 오겠다”는 말만 남기고 돌아서서 중환자실을 성급히 빠져나왔다. 그제야 나는 심한 죄책감을 느꼈다. 그의 눈물에 밀려 거짓말을 하고 말았다는 죄책감이었다. 많은 이들이 당신의 사연을 알고 있다는 말, 그들이 분노하고 있다는 말은 ‘거짓말’이었다. 세상 사람들은 그의 사연을 거의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진실’이었다. 노점상 관련 단체와 장애인 단체, 일부 재야 관계자 정도가 그의 사건을 알고 있을 뿐 세상은 그의 분신에 아무런 관심도, 분노도 없었다. 그런데 나는 왜 그에게 그런 거짓말을 했을까. 나는 분신으로 온몸이 화마에 휩쓸려 어쩌면 지금이 마지막일지 모르는 최정환을 어떻게 해서든 위로하고 싶었다. 그런 마음에 사실과 다른 거짓말을 해 버린 것이었다. 나는 자꾸만 그것이 마음에 걸리고 미안하고 또 부끄러웠다.

_9. 당신의 이름을 세상에 꼭 남기겠다, 157-158쪽


나는 군 헌병대의 수사 왜곡이 가능한 이유가 독선적이고 폐쇄적인 수사 제도에 있다고 주장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억울한 죽음을 막을 방법도, 지금까지 발생한 김훈 중위 사건이나 허원근 일병 사건과 같은 잘못된 수사 결과를 바로잡을 길도 없다. 군 헌병대의 ‘독선적 완장 권력’의 폐해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알 수 있는 또 다른 사건이 있다. 지난 2013년 10월 국방부 국정감사 당시 사회적 파문을 일으켰던 이른바 ‘헌병대 수사관 성관계 요구 문자’ 사건이다.

2013년 9월 어느 날이었다. 밤늦은 시간에 생각지도 못한 전화를 받았다. 군에서 의무 복무 중이던 아들을 잃은 어머니였다. 무슨 일이시냐는 내 물음에 어머니는 잠시 주저했다. 그러더니 “사실은 제가 너무 억울하고 치욕스러운 일을 당해 상의하고 싶어 전화했습니다. 지금 와서 이런 이야기를 해도 될지 모르겠네요”라고 했다. 무슨 말씀이든 상관없으니 편하게 하시라고 하자, 참으로 충격적인 내용을 털어놓았다. 헌병대 수사관이 군 사망 사고 유족 어머니에게 보낸 성관계 요구 패륜 문자 사건이 그 내용이다.

“때론 친구, 때론 애인으로 만나고 싶어. 무덤까지 비밀로 지키기로. 뽀도 하고 싶은데 어쩌지.”

“좀 전 문자 왜 답 안 해, 빨리 답해. 때론 애인처럼 뽀하구 싶은데 어쩌지. 뒤끝 없이 화끈하게.”

“뭘 생각해 본다는 거야, 결정하면 되지. 쫀쫀하긴, 죽으면 썩을 몸, 즐겁게 사시오, 후회 말구.”

의무 복무 중 사망한 아들의 사인 재조사를 담당한 헌병 수사관이 그 어머니에게 보냈다는 문자 중 일부다. 자식을 잃고 끝없는 절망에 빠진 불쌍한 어머니에게 헌병대 수사관이 어떻게 이런 문자를 보낼 수 있는지 듣고 있던 나도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 문자를 나에게 보내달라고 그 어머니에게 부탁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 어떤 막장 드라마에서도 상상할 수 없는 패륜의 극치였고, 직접 보지 않고서는 믿을 수 없을 정도였기 때문이다.

문자를 전송받고 사실을 확인한 후 나는 다시 고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문제를 어찌 처리해야 할까. 어머니 역시 억울한 마음을 풀 수 없어 말하기는 했지만 문자를 세상에 공개하는 문제 앞에서는 주저했다. 남편과 다른 아들은 그 일을 모르고 있었는데, 만약 그것을 세상에 공개했다가 그들이 알게 되면 또 어떻게 될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얼마간 시간이 지난 후 어머니는 문자를 공개하기로 결심했다. 어머니로서, 또한 여자로서 치욕스러운 일이었지만 그런 이유로 숨긴다면 자신과 같은 제2, 제3의 피해자가 나올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 같은 패륜 문자를 보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군 헌병대의 잘못된 수사 태도와 제도를 바로잡지 않으면 안 된다는 나의 설득에 동의한 것이기도 했다.

_11. 헌병대 수사관의 폐륜 문자, 국방부 사과에도 어머니는 왜 울까, 187-188쪽


“저기, 제가 정말 궁금해서 그러는데요. 기분 나쁘면 답변하시지 않아도 되는데요.”

“아, 네. 말씀하세요. 뭔데요?”

“저기요, 제가 정말 몰라서 그러는데요. 지금 동성애자 단체에서 일하고 계시잖아요. 그럼 간사님도 동성애자이신가요?”

“네, 맞아요. 그게 궁금하신 거였나요? 하하하.”

이제 막 시작하는 새내기 활동가였지만 그래도 명색이 ‘인권 운동’을 한다는 사람이 성 소수자에 대한 차별적인 인식을 갖고 있다고 화를 낼까 걱정했는데, 오히려 쿨한 그의 답변에 안심이 되었다. 그래서 정말 묻고 싶었고 오래전부터 진짜 궁금했던 그 질문을 했다.

“제가 정말 궁금해서 그러는데요. 혹시 언제 처음 동성을 사랑하게 되었나요? 언제 그런 감정이 생겼어요?”

쿨하게 답변하던 그가 약간 진지한 모습으로 나를 보았다. 내가 민감한 질문을 하여 그가 화를 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결국 실수를 했구나. 인권 운동을 한다는 사람이 성 소수자에 대해 차별적 발언을 했다며 비난받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 순간이었다. 그가 다시 웃으며 나에게 말했다.

“그럼 제가 역으로 한번 여쭤 볼게요. 고 간사님은 이성애자시죠? 그럼 언제부터 이성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되셨어요? 혹시 아세요?”

그랬다. 번개에 머리를 맞을 때의 느낌이 이런 것이 아닐까 싶었다. 생각해 보니 내가 언제부터 이성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는지 나도 알 수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해 본 적도 없었고 그렇게 하려고 마음먹어 본 적도 없었다. 그의 답변도 마찬가지였다. “생각해 보니 언제 그랬는지 모르겠다”는 내 말을 받아 그가 나에게 들려준 답변이었다.

“저도 마찬가지예요. 그냥 자연스러운 거예요. 이성애자가 그런 것처럼 동성을 사랑하는 성 소수자 역시 마찬가지로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이 들고 그런 마음이 행복할 뿐이에요. 그런데 그 대상이 동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받는 거죠. 이성을 사랑하는 것처럼 동성을 사랑하는 것으로 그냥 봐 주시면 얼마나 좋을까요.”

_13. 다르다고 틀린 것이 아니다, 223-224쪽


학생은 실수할 권리가 있다. 어른은, 교사는 그 실수를 용서할 의무가 있다. 교육은 실수하는 아이를 다시 세우는 반복 행위이며, 교사와 부모는 교육으로 아이가 실수를 통해 거듭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하는 ‘무한 책임’만 있다고 생각한다. 체벌을 배제한 교육 실현을 위해 어른들은 계속해서 노력해야 한다. 아이가 배운 것은 전부 어른의 책임이다. 아이가 좋은 것을 배웠다면 어른의 좋은 모습을 배운 것이며, 반대로 나쁜 것을 배웠다면 그 역시 어른의 책임이다. 아이들의 성(性)을 매수하는 것은 어른이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의 잘못은 반성하지 않고 탈선하는 아이들만 문제라는 비윤리적이며 이중적인 도덕관념을 가진 이들이 너무 많다.

잘못한 아이에게는 “잘못했으니 넌 좀 맞아야 해”라고 말하는데, 더 큰 잘못을 하는 어른과 선생님을 때리는 사람은 누가 있는가. 어른은 안 되는데 학생은 왜 때리고 맞아야 하는가. 잘못했다고 해서 어른을 때리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짓이라고 한다면, 아이도 때려서는 안 된다. 누구도 때릴 권한은 없으며, 누구도 그런 체벌을 당해야 할 이유가 없다.

내 아이가 맞는 것은 절대 안 되지만 다른 아이를 체벌하는 것은 필요하다는 일부 학부모들의 이중적인 자세 역시 비판받아야 한다. 자기 아이가 맞는 것은 무슨 이유든 극렬하게 항의하면서도 체벌에 대한 여론조사를 하면 ‘그래도 체벌은 필요하다’고 응답한다. ‘절망적’인 이중성이다. 때려서, 그렇게 맞으며 성장한 사람이 훌륭하게 큰다면 폭력이 난무하는 환경에서 성장한 아이들은 전부 모범생이 되었겠다. 터무니없는 논리다.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지금 나이가 어리다고 해서 영원히 아이가 아니다. 결국 그 아이가 어른이 되는 것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 다섯 살 동생에게 “잘못하면 맞아야 한다”고 당연하다는 듯 말하는 그 일곱 살 아이처럼 성장하게 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성장한 아이들이 자기 마음에 안 든다고 배우자를 때리고 아이를 때리며 폭력을 대물림한다. 야만의 근본 바닥에 체벌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깔려 있는 것이다.

_14. 어른은 그러면 안 되고 학생은 그래도 되나, 249-250쪽


고민은 2012년 8월 1일 시작되었다. 2003년 ‘대통령 소속 의문사진상 규명위원회’에서 조사관으로 일할 때 내가 담당했던 사건이 재야인사 장준하 선생의 의문사 규명이었다. 그런데 그분의 묘 이장 과정에서 동그랗게 구멍 뚫린 유골이 세상에 드러난 것이다. 무려 38년 만에 드러난 진실이었다. 그때 장준하 선생의 유골을 확인하며 깨달았다. 장준하 선생이 왜 자신의 상처를 그 시점에 세상에 드러냈을까. 나는 그것을 자신의 의문사 논란에 스스로 종지부를 찍는 ‘처절한 고발’이라고 생각했다. 추락 실족사 했다며 그동안 자신의 죽음을 왜곡해 온 유신 독재자 박정희 추종 세력들에게 ‘나는 타살당했다’는 진실을 알리며 유신 독재 부활을 저지하려는 장준하 선생의 또 다른 반유신 투쟁이라고 확신했다.

실제로 대선이 끝난 후인 2013년 3월 26일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장준하 선생 사인진상조사 공동위원회’ 주최로 열린 법의학 감정 결과 발표회에서 타살 의혹은 사실로 밝혀졌다. 서울대 의대 명예교수인 이정빈 법의학자의 주도로 발표된 법의학 감정 결과는 “장준하 선생의 두개골 함몰은 외부 가격에 의한 것이고, 가격으로 즉사한 뒤 추락해 엉덩이뼈가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처럼 명백하고도 분명한 장준하 선생의 타살 의혹에도 불구하고 제18대 대통령 선거를 앞둔 당시 새누리당과 박근혜 후보의 입장은 요지부동이었다. 국가 차원의 재조사로 장준하 선생의 사인을 조속히 밝혀야 한다는 사회 각계의 호소를 그들은 끝내 외면했다. 그때부터 나의 고민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랬다. 박근혜 후보는 진실하지 않았다. 눈에 보이는 진실마저 자신의 선거 승리를 위해 계속 외면하고 부인했다. 더구나 지난 2007년, 박근혜 후보는 스스로 장준하 선생의 부인 김희숙 여사를 찾아가 과거 유신 독재자였던 자기 아버지의 잘못을 사과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 박근혜 후보가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돌변하여 장준하 선생의 억울한 죽음 자체를 부정한 것이다. 더 나아가 장준하 선생이 실족사 했다며 목격자를 자처해 온 이의 말까지 빌려 가며 거듭 사인 재조사를 거부했다. 더 이상 내가 침묵할 수 없는 이유였다. (중략)

결국 나는 공무원직을 스스로 내려놓음으로써 ‘정치적 중립’을 강요받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되었다. 나에게는 소중하고도 유일한 생계 수단이었지만 작은 기득권 하나를 내려놓고 ‘정치적 자유’를 얻었다. 

_16. 이 말 한마디 하려고 공무원 사표 냈습니다, 277-279쪽









지은이 소개


고상만


경기도 판교에서 태어났다. 1989년 대학 입학 후 광주민주항쟁을 비롯해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공부하면서 자연스럽게 학생운동을 시작했다. 그러던 1990년 3월, 함께 학생운동을 하던 동료가 의문의 죽음을 당하고 그 죽음이 어떻게 왜곡되는지를 지켜보면서 ‘사회적 약자에게 힘이 되는’ 인권운동가의 길을 걷기로 결심한다. 이후 1992년 ‘유서대필 조작 강기훈 무죄 석방 공대위’를 시작으로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전국연합 인권위원회’ ‘천주교 인권위원회’ ‘인권연대’ ‘반부패 국민연대’ 등에서 직업 운동가로 일했다. 이어 1998년에는 ‘판문점 김훈 중위 사건 진상규명 국방부 특별합동 조사단’ 자문위원으로, 또 ‘대통령 소속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에서 조사관으로 일했다. 이때 1975년 8월 의문사한 재야인사 장준하 선생 사건의 조사팀장으로 일하며 그동안 가리워져 있던 진실의 일부를 드러내어 모범 조사관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또한 2006년에는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의 조사관으로, 다시 2010년에는 서울특별시 교육청에서 감사 공무원으로 일했다. 현재는 국회 김광진 의원실에서 의무 복무 중 사망한 군인들의 명예회복을 위한 법 제정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저서로는 《장준하, 묻지 못한 진실》 등 다수가 있으며, 2006년 ‘국무총리 소속 민주화운동 명예 회복 및 보상 심의위원회’로부터 민주화운동 관련자 결정을 받았고, 2013년에는 <오마이뉴스>에서 주는 ‘올해의 뉴스 게릴라상’을 받기도 했다. 2014년 4월부터 국민TV 라디오에서 팟캐스트 “고상만의 수사반장”을 방송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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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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