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년의 인류가 바라보는 미래의 모습은 어떨까?


오늘날에는 세계가 안고 있는 각종 갈등과 동요에도 불구하고, 모던한 것이란 서양의 가장 행복하고 자유로운 나라의 주민들이 누리는 모든 수단을 누리는 것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다시 말해서 ‘현대적’이라는 것은 전 세계 보편적으로 노동하고 기업을 일구고 먹고 마시고 치료 받고 학습하고 주거 생활을 영위하고 교육을 받고 청결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모든 물질적 수단과 더불어 정치적 속박, 금기, 편견 등 남녀노소 구별 없이 모든 사람의 발전을 가로막는 전근대적인 규정에서 벗어나는 데 필요한 모든 정치적 수단을 누리는 것을 의미하게 되었다. 모던하게 살기, 즉 현대화란 그러므로 이성 지향적 미래 비전과 그로부터 파생되는 모든 것, 즉 기술 진보, 혁신, 개인의 자유, 인권, 시장, 민주주의 등을 수용하는 것이다.




<아메리칸 뷰티>(1999)의 장면들.

1989년 소비에트 체제 붕괴 이후, 서양화는 곧 현대적이라는 말과 동의처럼 쓰인다. 미디어를 통해 서양의 

현대적 삶을 접한 전 세계 수십억 명의 사람들은 그들과 같은 삶을 열망한다. 한편 미국 중산층 가정이 

파국으로 치닫는 과정을 그린 영화 <아메리칸 뷰티>는 ‘미국인의 삶과 이상향’의 공허와 허위의식을 파고든다. 



오늘은 그렇다 치고, 그렇다면 내일은 무엇이 모던한 것으로 대접받게 될까? 미래의 의미는 어떻게 달라질까? 더 많은 이성? 더 많은 개인의 자유? 더 많은 권리? 아니면 반대로 더 많은 의무와 책임? 더 많은 변화? 아니면 더 많은 안정성? 더 빠른 속도? 아니면 느리게 살기? 더 많은 제조업? 아니면 더 많은 서비스업? 사람들은 더 오래 살기를 희망하게 될까 아니면 보다 더 사람답게 살기를 원할까? 더 많은 자연을 누리고 싶어 할까 아니면 더 많은 인공물을 추구할까? 더 두터운 신앙? 아니면 더 확고한 실존? 미래에 있어서 모더니티의 예술은 어떤 형태로 나타나게 될까? 미래의 관습, 유행, 전투, 사랑은 어떤 양상을 띠게 될까? 각각의 인간, 민족, 나아가 인류 전체는 어떤 미래를 계획할까? 오늘날의 우리는 현재의 열망과 예술을 읽음으로써 그것을 짐작할 수 있을까?



우리는 인공물 상인이 될 것인가? 결국 불멸할 것인가?


요컨대 현재 통용되고 있는 서양 지향적인 모더니티 개념은 분명 앞으로도 상당히 오래도록 군림할 것이다. 서양에서 현재 절대 다수를 이루고 있으며 다른 지역에서도 점점 더 세를 불려가고 있는 개인주의가 궁극적인 목표(해방자 역할을 한다는 이유에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최근 두 세기 동안 형성되어온 구미식 발전 모델을 스스럼없이 받아들일 것이다. 그들은 점점 더 자유로운 풍습과 합리적인 행동을 추구할 것이다. 이들에게 ‘현대적’이란 점점 더 많은 부를 축적하고 점점 더 오래 삶을 향유하는 것이다. 신체 외부용 보철 기구는 물론 내부에 장착하는 기구(기계적, 화학적, 유전학적, 디지털 등 모든 것을 포함)에 이르기까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생명을 연장하고자 할 것이다. 더 오랜 시간이 지나면 인공 생명이나 성적 기능의 통합 등을 통해 인간은 점차 인공물 제조자 혹은 인공물 상인으로 변해갈 것이다. 나는 이를 “하이퍼 모더니티” 또는 “인공물 지향적 모더니티”라고 부르려 한다.










1946년에 재발행된 《멋진 신세계》.

"이렇듯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점점 사물이 되어가는 인간은, 사물 인간을 구입하는 자들(사물이니 당연히 시장에서 팔리게 될 것이다) 입장에서 볼 때, 소비재가 되어갈 것이다. 구매한 자들에 의해서 고아원 같은 곳에 버려지기도 하고, 새 모델이 나와 인기를 끌면 중고품이 되어 다시 팔리거나 길거리에 던져지는 처지가 될 것이다. 불멸을 향한 욕망, 영원한 향락주의에 이끌려 인공물이 되어버린 인류는 결국 옹기종기 모여 있는 자기도취적 인공물의 군집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올더스 헉슬리가 1932년에 《멋진 신세계》에서 소름 끼칠 정도로 생생하게 묘사하지 않았던가."(본문 중에서)









그런가 하면 반대로 오늘날 통용되는 모더니티는 이제 수명이 다했다고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기진맥진한 서양은 윤리적, 금융적, 생태환경적, 기술적, 미학적 재앙을 향해 치닫고 있으며, 이성은 몰락했다고들 말한다. 일부 사람들은 미래를 예측하거나 앞질러 소망하는 건 한마디로 불가능하다고 일축해버린다. 이들은 미래란 예측할 수 없는 현재의 연속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부류는 스스로에게 “모더니티를 부정하는 자amoderne”라는 꼬리표를 붙인다.

그뿐 아니다. 미래를 위한 가장 좋은 유토피아는 이전 시대의 문화를 건설하는 데 토대가 되었던 가치들, 다시 말해서 실존 지향적 모더니티 또는 신앙 지향적 모더니티로의 회귀라고까지 말하는 사람들도 더러 눈에 띈다. 이러한 “과거 지향적 현대인 rétromoderne”들은 종교적 원리주의나 생태적 전체주의 또는 인종의 순수성 등을 주장할 것이다. 이 경우 이들 각각을 “신정정치 지향적 모더니티théomodernité”, “생태 지향적 모더니티écomodernité”, “민족 지향적 모더니티ethnomodernité” 등으로 부르기로 하자.

마지막으로 서양 지향적 모더니티는 세속적이 되었든 종교적이 되었든 이타주의, 그러니까 이기주의에 대한 거부와 장기적인 관점에 입각한 선택에 토대를 둔 혁신적인 윤리 형태에 의해서만 극복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부류도 존재한다. 우리는 이를 가리켜 “이타적 모더니티altermodernité”이라고 명명할 수 있다. 이들로부터 새로운 형태의 기업, 경제, 사회, 이념, 관습, 예술, 생활방식이 형성될 수 있다. 또한 새로운 형태의 노동, 창조, 여가 활용, 사랑, 정치 등도 제시될 수 있다.

유사 이래 인류는 더 이상 반복적인 세계에 만족하지 않고 자신의 운명을 두 손에 움켜쥔 채 이를 개척해나가기로 결심했다. 이타적 모더니티는 그 이후 인류가 빠져든 함정에서 벗어나기 위한 유일한 출구다. 이타적 모더니티는 가능하긴 하나 실제로 이루어질 수 있는 개연성은 매우 낮다. 예술은 이타적 모더니티가 도래하느냐 실패하느냐의 문제에 있어서 매우 비중 있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2030년의 세계가 어떤 양상으로 나타날지는 이제부터 살펴볼 모더니티에 대한 다양한 견해와 그 견해를 지지하는 세력이 벌이는 각축전에 달려 있다. 이 시기에 인류가 2060년을 어떻게 생각하고 준비하느냐에 따라 생산하고 투쟁을 벌이는 방식이 좌우된다는 말이다.

 (본문 17~20쪽)


<인류는 어떻게 진보하는가> 자크 아탈리 지음, 양영란 옮김,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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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그리스 철학의 갈등에서

이성 지향적 모더니티가 탄생하다


기독교는 일신교의 힘, 다신교의 유연함, 중앙집권적 권력을 이어받았다. 이제 중요한 건 개개인의 실존이 아니라 집단이었다. 개인의 자유와 이성이 아닌 교회의 자유와 이성이 신앙과 섬기기 의식이라는 대가를 지불한 자들을 품어주고 보호해주었다. 영주들은 자신들과 교회의 이익을 위해 봉건사회를 조직했다. 이러한 모더니티는 유럽의 경우 1,500년 이상 지속되었다.

12세기에 들어와 이탈리아와 북유럽에서는 농업혁명과 산업혁명이 시작된다. 상인들, 즉 부르주아들은 다른 방식으로 생산하기 시작한다. 임금제도 등장한다. 부르주아들은 새로운 예술을 원했다. 그들의 자금으로 세운 이동식 시계탑은 붙박이식 교회당 종탑과 경쟁 관계에 놓인다. 건축, 음악, 문학 등은 종교가 아닌 다른 주제에 관심을 보인다. 화가들은 부르주아 고객들의 초상화를 그리는 데 열을 올리고, 심지어 풍경화도 등장한다. 당시로서는 굉장히 대담한 시도가 아닐 수 없다.

15세기부터는 아메리카의 발견, 인쇄술과 회계의 발달과 더불어 개신교 치하의 유럽과 이탈리아 일부 항구도시에서 훗날 “모던한 시대의 유럽”이라고 부르게 될 것이 형성된다. 상인들과 장인들이 농부보다 우위를 점하기 시작한다. 유럽 대륙의 심장은 베네치아에서 네덜란드 7개 주 연합공화국으로 옮겨간다.

가톨릭 치하의 유럽에서는 여전히 신앙 지향적 모더니티를 믿으며 미래는 속죄에서만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모던한 자”, 즉 현대인이라고 지칭했다. 반면 그리스인들이 떠받들던 이성으로의 회귀만을 고집하는 자들은 “고대인”이라고 불렸다.



트라야노 보칼리니의 《파르나스의 단편소설집Ragguagli del Parnasso》

신구논쟁의 포문을 연 책이다. 신구논쟁은 고대 그리스 지지자 대 교회 옹호 세력의 갈등 속에 

이성 지향적 모더니티를 촉발시킨 계기가 되었다.


북유럽이나 이탈리아에서는 모더니티에 대해 기독교식도, 그리스식도 아닌 새로운 개념이 점차 형성되기 시작한다. 이것이 바로 실존 지향적 모더니티도, 신앙 지향적 모더니티도 아닌 이성 지향적 모더니티다. 이성을 신봉하는 ‘새로운 모던한 자들’은 기술 변화와 과학 발전에 큰 관심을 보이며 기독교적 가치로부터 등을 돌리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리스적 사고만을 유일한 영감의 원천으로 추앙하지는 않는다. 이 ‘새로운 모더니티’는 진보를 신봉하며 시장과 자유에 신뢰를 보낸다. 그에 따르면 ‘미래의 미래’란 상업의 자유, 생각의 자유, 소유의 자유, 교환의 자유, 투표의 자유를 확산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러한 모더니티는 네덜란드에서 시작되어 산업혁명을 통해 영국으로, 독립전쟁을 통해 아메리카로, 정치 혁명을 통해 프랑스로 번져나간다.


나열된 순간의 연속으로 사라지는 역사



“모더니티”라는 용어 자체는 그 뒤에 이어진 세기, 즉 19세기 초 발자크의 펜을 빌어 프랑스어에서 처음으로 등장했다. 모더니티는 하나의 시대, 하나의 문명, 미래를 바라보는 하나의 개념을 가리킨다. 여기에는 개인의 자유와 인권, 이성을 중시하는 합리주의와 실증주의, 기술과 산업의 진보에 대한 신념 등이 혼재되어 있다. 모더니티란 또한 정복이기도 하다. 정복을 위해서는 동력이 필요하다. 오귀스트 콩트에게는 과학, 생시몽에게는 산업, 마르크스에게는 계급투쟁, 토크빌에게는 사회적 조건의 평등화와 민주주의, 막스 베버에게는 합리화가 각각 그 동력이었다.

19세기 말, 모더니티에 대한 이 같은 새로운 의미에는 또 다시 이의가 제기된다. 제일 먼저 반기를 든 건 사회주의를 주장한 푸리에와 프루동, 마르크스 등이었다. 이들을 필두로 이성 지향적 모더니티의 새로운 형태, 즉 소외와 사유재산의 전횡에서 해방된 새로운 부류의 인간을 상상하고 그러한 인간의 탄생을 목적으로 삼는 다양한 형태의 모더니티들이 등장하게 된다.

한편 니체와 더불어 “허무주의”라고 불리는 또 다른 형태의 반발도 시작되었다. 허무주의는 훗날 썩 적절하다고는 할 수 없는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용어로 대체된다. 니체 중심의 반발 움직임은 음악과 회화에서도 관찰된다. 이는 미래의 의미에 대한 변화를 예고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다가올 20세기는 실존, 신앙, 이성 지향적 모더니티가 패배를 맛보는 세기가 될 것이라는 직관에 가까웠다.

그 후 1950년대부터 인류는 이성 지향적 모더니티의 대대적 회귀를 경험하게 된다. 인간에게 여행 수단(기차, 자동차, 비행기)과 폭력 수단(무기), 특별히 여성들에게는 조상 대대로 이어져 내려오던 임무(빨래, 청소, 요리)를 최대한 손쉽게 해치울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해준 상업적 민주주의는 이제 각종 소비재를 통해 어린이들의 욕구(오락, 학습)마저 충족시켜주려고 안간힘을 쓴다. 뿐만 아니라 상업적 민주주의는 어른들마저 어린이로 변화시키고 그들의 변덕을 만족시키려 한다. 상업적 민주주의는 자신의 규칙을 그들에게 강요하지 않고, 무엇이 되었든 그들의 욕망을 부추기며, 그들이 무제한 빚을 지도록 내버려두고, 더 이상 공동체적인 삶을 존중하지 않는 행태를 묵인한다.



피에로 만초니의 <예술가의 똥Merda d'artista>

컴템퍼러리 예술이 시작된 기준 연도로 이 작품이 등장했던 1961년을 꼽기도 한다. 

29세에 요절한 피에로 만초니는 말 그대로 '예술가의 똥'을 30그램씩 통조림 깡통에 담아 팔았다.



이러한 모더니티는 이제 너무도 강력하고 독재적이며 변화무쌍하기 때문에 새로운 것에 대한 강박관념과 자주 혼동된다. 그뿐 아니라 “컨템퍼러리”, 즉 동시대적이라는 탈을 쓴 찰나적인 것 앞에서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기도 한다. 미래는 현재의 연속에 불과한 것이 된다. 아주 사소한 것이라고 해도 앞선 현재에 비교해서 약간의 차이나마 지니는 것, 미래는 다만 그 사소한 차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다른 아무런 의미도 지니지 않는다. 마치 변화가 지나치게 가속화되다 보니 삶의 기간이 무한히 연장된다는 착각을 준다고 할까.

(본문 13~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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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어떻게 진보하는가> 자크 아탈리 지음, 양영란 옮김,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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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 속 모더니티의 변화


인류 역사를 통틀어 다양한 문명권과 언어권에서 지녀온 다양한 의미의 굽이를 따라간다는 것은 적재적소에서 인간의 삶을 조건 지어온 비밀들을 찾아가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는 각각의 인간 집단이 주어진 시간과 공간 속에서 자신에게 해가 되는 것은 애써 물리치고, 자신이 꿈꾸는 유토피아에 어울리는 것은 한껏 고양시키며 기어이 이루고 싶었던 것을 생각해온 방식을 구별해보는 것이다. 또한 그것으로부터 가치관, 이상향, 미학적 관점, 분노를 일으키는 주제들, 진보의 개념, 경제 구조, 기업관, 정치체제, 풍습 등의 변화를 추론하는 것이기도 하다. 조금 더 산문적으로 말하자면, 먹고 입고 이동하며 거주하는 방식, 일하고 여가를 보내고 사랑하고 유혹하며 행복을 추구하는 방식이 변화해온 추이를 짚어보는 것이다.

이러한 성찰은 절대 괜한 짓이 아니다. 오늘날 우리가 애착을 갖고 결정적인 성취라고 여기는 가치들(가령 민주주의, 개인의 자유, 인간의 기본권 등)이 미래에도 여전히 똑같은 대접을 받으리라고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경우에 따라서는, 상상에서든 실재에서든, 다른 가치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히에로니무스 보스, <세속적 쾌락의 동산>, 1490년~1500년 추정

역사가 시작된 이래, 즉 반복 순환의 세계관에서 벗어난 이후 인류는 항상 미래의 모습을 상상해왔고, 

그 모습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한 사회의 주도권을 누가 쥐고 있느냐에 따라 계속해서 달라졌다. 



새로운 집단이 등장해서 권력을 쟁취할 때마다 그 집단은 매번 자신이 꿈꾸어온 사회를 위한 변화만을 “모던하다”고 여긴다. 그들은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고, 지속성 속에 그 권력을 안착시키려 한다. 이렇게 해서 ‘예전의 것’에 비해 훨씬 선호해야 마땅한 ‘새로운 것’을 정의하고 이를 강제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이들 권력 집단, 즉 지배적인 엘리트들로부터 자금 지원을 받는 한 시대의 예술(회화부터 문학, 영화 혹은 새로운 형태의 예술까지도 포함)은 이들이 지닌 호방함, 이들의 미래 비전을 반영한다. 예술은 모더니티를 바라보는 지배적인 관념을 사회의 다른 어느 분야보다도 효과적으로 구체화해서 드러내 보인다.

지배층이 현대화, 곧 ‘모던하게 만들기’를 노골적인 목표로 삼는 사회는 미래에 대해 명확한 비전을 가지고 있으며, 이때의 비전은 흔히들 “진보”라고 부르는 것과 연계되어 있다.


인류 최초의 혁신이 시작되다!


선사시대 사회는 수천 년에 걸쳐 이어져 내려오는 동안 기꺼이 반복적인 행태를 보여왔다. 변화란 변화는 모조리 죽음을 내포하고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인간들은 확신을 갖지 못하면서도 매일 아침 태양이 다시 떠올라주기를 고대했다. 가을에는 비가 내려주기를, 봄에는 새싹이 돋아나주기를 소망했다. 변화만큼 이들에게 걱정스러운 건 없었다. 그러므로 이들에게 모더니티란 동일한 것의 회귀였다고 할 수 있다. 안정적인 것이 곧 모던한 것이었다는 말이다. 이들의 우주발생론은 이들이 생산해낸 예술과 마찬가지로 그것이 아무리 독창적이고 천재적이라 할지라도 결국 이러한 유토피아에 대한 옹호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초기 기술의 진보와 더불어 개인을 위한 새로운 것이 차츰 긍정적인 가치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불의 발견, 돌을 그저 깎아서 쓰다가 점차 다듬어서 쓰게 된 연장의 변화, 지렛대의 발명, 바퀴의 등장, 유목민에서 정착민으로의 변신, 농촌에서 도시로의 이동 등이 말하자면 초기 기술에 해당된다.

새로운 것은 근동 지역 유목민들과 지중해를 오가는 뱃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먼저 기회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이들은 각각 농업의 창시자이며 최초의 도시를 건설한 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미래가 인간의 고통을 줄여주고, 죽음의 순간을 늦춰주며, 보다 더 잘 살 수 있게 해주기를 희망했다. 인간 개개인이 집단으로부터 빠져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인간은 그 자체로 소중한 존재가 되었다. 이것이 실존 지향적 모더니티이다. 특히 히브리 문명권과 그 뒤를 이은 그리스 문명권은 각자 나름대로 새로운 것의 정당성을 변호했다.

사막 민족인 유대인 사회는 새로운 것을 환영하는 태도를 보였다. 인류가 이 땅에서 이루어야 할 임무이자, 메시아가 이 땅에 강림하여 죽은 이들을 부활시키기 위해 선결되어야 할 조건인 세상 개조réparation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이 사회는 여러 문명권들 가운데 새로운 것과 변화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인 최초(적어도 서양 문명권에서는)의 문명권 중 하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이 보기에 미래의 가장 좋은 점은 세계를 개조하면서 동시에 불멸성에 다가갈 수 있다는 점이었다.









램브란트, <십계 판을 든 모세>, 1659년

"모세는 자신이 과거에 누렸던 삶의 모든 규칙을 어기면서 히브리 민족을 노예 상태에서 해방시켰다."



한편 어느 누구보다도 외부에서 오는 것들을 쉽게 받아들여 자기 것으로 만드는 데 능한 바닷사람들로 구성된 그리스 세계에서도 새로운 것이란 그 자체로 좋은 것이었다. 각각의 존재, 시민 각자에게 아름다움과 쾌락, 안락을 위한 새로운 원천을 제공하기 때문이었다.

중앙집권적인 군사 사회였던 로마는 자신에게 패한 유대인 사회와 그리스 사회로부터 계승한 유산의 일부를 자기 것으로 받아들였다. 로마 사회가 이룩한 주요 혁신으로는 강력한 군대를 꼽을 수 있다. 도시 계획에 있어서도 괄목할 만한 진전이 있었다.

그 이후 그리스화 된 유대 종교 집단, 즉 기독교는 로마제국 내부에서부터 차츰 더 나은 것을 향한 새로운 시선을 받아들이게끔 강제했다. 새로운 시선이란 미래가 속세에 있지 않고 속죄와 부활에서 찾을 수 있다는 관점을 가리킨다. 유대—그리스 사회에서는 축복으로 여겨지던 물질적인 부가 이제 저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교회를 위해 기꺼이 자기 재산을 내놓는 자들이 ‘모던한 자’, 즉 현대인이었다. 이것이 바로 신앙 지향적 모더니티이다.


(본문 9쪽~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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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어떻게 진보하는가> 자크 아탈리 지음, 양영란 옮김,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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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석학 자크 아탈리의 긴급한 질문

우리는 왜 '미래의 미래'를 위해 투쟁해야 하는가?







인류는 어떻게 진보하는가

자크 아탈리 지음, 양영란 옮김

책담






2016년 책담의 첫 번째 신간은 자크 아탈리의 <인류는 어떻게 진보하는가>입니다! 요즘 뉴스를 보면 ‘인류 진보라니, 이제 다 끝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전 세계가 점점 더 불확실한 정국으로 치닫고 있는데요, 그럴수록 우리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넓고 깊게 살펴보는 일은 더욱 중요한 것 같습니다.


jacques attali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인류는 어떻게 진보하는가>를 쓴 자크 아탈리


현존하는 최고의 석학이자 미래학자로 꼽히는 아탈리는 이 책을 통해 궁극적으로 우리가 맞게 될 7가지 미래를 제시합니다. 이를 위해 인류의 태동부터 오늘날까지 역사를 일구고 투쟁해온 위대한 인물들과 사상들을 한 줄기 ‘모더니티의 세계관’으로 꿰어냅니다. 

진보에 대한 열망이 처음 드러난 고대 문명부터 미래에 대한 비전이 찰나의 연속으로 사라져버린 컨템퍼러리 시대까지 인류사를 실존・신앙・이성 지향적 모더니티의 시대로 구분해 삶의 방식과 시대정신의 변화를 추적합니다.


자크 아탈리가 말하는 모더니티란?

여기서 모더니티는 흔히 말하는 합리성에 기반한 근대화로서의 '모더니즘'과는 결이 조금 다릅니다. 한 사회가 상상하고 지향하는 미래상이지요. 한 사회가 앞으로 어떤 모습이어야 한다는 상을 보여주기에 '모더니티'는 고대 이후로 정치적, 예술적, 윤리적 투쟁의 목표가 되어왔습니다.


우리는 왜 지금 ‘미래의 미래’를 위해 상상하고 투쟁해야 할까요?


그런데 지금 모더니티에 천착하는 작업이 필요한 일일까요? 역사 속 모더니티를 되짚는 일은 궁극적으로 우리의 삶과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향할 것인지 도출하기 위해서입니다. 모더니티의 미래를 생각하는 일은 다음 세대가 미래를 어떻게 상상할지를 추론하는 것입니다. 2030년의 사람들은 어떻게 2060년의 세상을 상상하고 그것을 실현하고자 준비할지, 또 이에 대해 어떻게 반기를 들고 투쟁할지를 지금 살펴보는 것이지요. 

아탈리의 결론은 '우리의 미래란 결국 우리가 미래를 생각하는 방식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지금 우리 시대에 들끓는 목소리들을 통해 미래에 가능한 7가지 모더니티를 제시합니다. 하이퍼, 민족, 생태, 비非, 복고, 신정정치, 이타적 모더니티가 그것입니다. 그중에서 가장 유력한 인류의 미래상은 ‘하이퍼(인공물) 모더니티’일 것입니다. 실제로 한 의사가 중국에서 전신 마비 환자의 머리를 분리해 건강한 사람의 몸에 붙이는 수술을 계획한다고 합니다. 하루가 다르게 놀라운 기술의 진보로 ‘불멸의 꿈’에 다가서고 있는 이 시대를 보면, 민주주의나 인권을 비롯한 우리가 지금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가치들이 후순위가 될 수 있다는 경고가 먼 미래의 일은 아닌 듯합니다.

어떤 윤리적, 철학적 비전도 격변하는 기술의 진보를 따라잡지 못하는 시대에 인류는 과연 불멸을 향한 욕망을 달성할 수 있을까요? 어느 때보다도 불확실성이 세계를 지배하는 시대에 우리가 나아가는 길은 정녕 파멸을 향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인류는 어떻게 진보하는가> 잠깐 독서 1회(첫 회니까 짧게...)


모더니티와 그 역사를 생각해보는 일은 매우 시급한 과제다. 왜냐하면 모든 시대에 있어서 모더니티란 한 사회가 미래에 대해 품고 있는 개념, 그 사회가 미래에 대해 상상하고 소망하고 거부하는 것 등을 암묵적으로 뭉뚱그려 지칭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더니티의 미래를 생각한다는 것은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 우리가 미래에 대해 갖게 될 개념을 생각하는 것이다. 이는 지극히 매혹적인 주제가 아닐 수 없다. 가령 오늘날의 관점에서 구체적으로 보자면, 2030년에 사람들은 어떤 방식으로 2060년의 세상을 꿈꾸고 상상하며 이를 실현하고자 준비할지, 또 그에 대해 어떻게 반기를 들고 투쟁할 것인지를 지금 시점에서 생각해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끊임없이 변화를 거듭해온 하나의 개념, 크고 작은 정치적 예술적 투쟁의 궁극적인 목표가 되어왔던 ‘모더니티’라는 개념의 역사를 이야기할 뿐 아니라 역사의 각 단계에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 장래를 생각하고 준비해왔는지를 이해하려는 데 목적이 있다. 그래야만 앞으로 다가올 시대에 사람들이 모더니티를 대하게 될 방식을 유추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꼭 그렇게 해야만 할 필요가 있을까? 물론이다. 미래는 우리가 미래를 생각하는 방식에 따라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훗날 미래에 대해 갖게 될 생각이 미래를 준비하게 만들며, 인류가 나아갈 길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우리 앞에 펼쳐질 일곱 가지 미래

실존 지향적 모더니티, 신앙 지향적 모더니티, 이성 지향적 모더니티, 이렇게 세 가지 모더니티의 지배를 거치고 난 오늘날, 모더니티의 문제는 이론의 여지없이 해결된 것으로 보인다. 지구상 대부분의 지역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모더니티란 서구화와 동일시되고 있으며 그러한 현상은 앞으로도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말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서양의 승리를 의미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왜냐하면 자신의 가치들(그중에서도 특히 개인이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권리)을 남들이 전유함으로써 그 가치들이 보편화되는 바람에 서양은 자신만의 특수성을 박탈당했고, 그로 인해 자신의 우위마저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타 지역에서와 마찬가지로 서양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현재의 모더니티에 대한 개념에 대항하여, 또 현재 역사가 나아가는 방향에 대하여 가차 없는 투쟁을 벌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서구화에 대해 무엇보다도 도덕적 종교적 원칙을 유린하고, 문화적 다양성을 파괴하며, 자연을 황폐화시키고, 인간을 포함한 모든 사회적 관계를 점진적으로 인공물로 변형시킴으로써 이를 ‘상품화’한다고, 다시 말해서 인공 보철 기구가 모더니티를 평가하는 척도가 되는 단계인 ‘하이퍼 모더니티’로 이행하게 만든다고 비난할 것이다.

  이러한 ‘하이퍼 모더니티’에 반기를 드는 자들은 미래에 관한 여섯 가지 비전, 즉 각기 다른 모더니티를 제시하려 들 것이다. 이 여섯 가지 중에서 다섯 개의 모더니티(복고 지향적, 찰나 지향적, 신정정치 지향적, 생태 지향적, 민족 지향적)는 본질적으로 개인의 자유와 양립이 불가능하므로 저항할 수 없는 자유의 요구 앞에서 무릎 꿇게 될 것이다. 그러면 결국 하이퍼 모더니티와 그에 따르는 망상으로 되돌아오게 될 것이 뻔하다.

  따라서 내 생각에는 오직 한 가지, ‘이타적인 모더니티’를 통해서만 인류는 정체성과 창의성, 자유를 동시에 유지해나가면서도 지속 가능한 미래를 구상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여기에 도달하기 위한 길은 매우 좁다. 그것도 치명적으로 좁다.

(본문 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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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랩 학교에 갇힌 아이들>이

학교도서관저널 2016년 1월 호에 소개되었습니다. ^^

 

"재난을 소재로 한 보기 드문 소설이다. (중략)

절망적인 상황에 처한 아이들이 어떻게 이 상황을 극복하는지 살펴보기 바란다.

학교에 갇힌 아이들의 심리가 잘 묘사되어 있다.

공포와 갈등을 극복하고 희망을 노래하는 법을 배우게 될 것이다.

아울러 우리를 둘러 싼 환경에 관심을 갖고 혹시 일어날지 모르는 재앙에 눈을 뜨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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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석 선생님이 추천하는

지금 이 순간 청소년 인문학

 

 

김재익, 이임찬, 조성환 지음 │145*210mm224쪽│201614일 발행

13,000원│인문•청소년 교양│ISBN 979-11-7028-046-0 (43100)

 

 

 

지금을 즐기며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설계하라!

 

너는 행복하니? 지금 자유롭니?

어떤 꿈을 꾸어야 할까?

어떤 사회가 바람직한 사회일까?

질문을 통해 자신을 알아 가고 세상과 마주하다.

 

 

 

기획의도

 

세계를 보는 시각을 키우기 위해서는 질문을 통한 자기 성찰과 세상을 성찰하는 힘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대학 진학률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세계의 리더를 키우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다른 사람들이 만든이론만 배우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 청소년 인문학》은 다른 사람들의 이론만 배워서는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기를 수 없다는 문제 의식에서 기획되었다.

인문학은 자기로 사는 법을 알려 주는 지침서와 같다. 인문학을 하게 되면 누군가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고유한 영역을 개척하게 된다. 자기가 인생의 주인이 되고 세상의 중심에 서게 된다.

우리 청소년들이 자기에게 부여된 고유한 능력을 가장 창조적으로 사용할 수 있기를, 지금을 즐기면서 행복하게 사는 길을 탐구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도서 소개

 

 인문학적 지식이 아닌, 인문학적 통찰 키우기

 

언제부터인가 한국 사회에서는 인문학 붐이 불고 있다. 서점에 가면 인문학 책이 베스트셀러 코너에 진열되어 있고, 기업을 운영하는 CEO들도 인문 고전을 공부하려고 노력한다. 학부모들도 자녀 교육에서 철학 같은 과목을 중시하기 시작했고,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인문학 강좌가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대체 인문학이 무엇이길래 한국 사회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일까?

인문학은 삶의 의미를 찾고, 입시 경제 체제에서 벗어나 한 박자 쉬기위해 필요한 학문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인문학은 생존과 같은 의미이다. 그러니까 인문학은 자기로 생존하는 방식을 알려 주는 학문이다.

우리나라의 대학 진학률의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세계의 리더는 나오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우리나라의 교육은 대체로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이론을 배우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심지어 논술을 할 때도 모범 답안을 외워서 쓰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세계적인 리더는 개인 혹은 조직의 갈 길을 결정하고 한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지휘하는 사람이다. 남이 만든 이론을 따라가기에 급급한 우리나라 교육 현실에서는 무언가를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기가 어려워진다. 그러니 자기로 생존하는 방식이 부족한 것이다. , 세계적인 리더로 성장하기 쉽지 않다.

 

《지금 이 순간 청소년 인문학》은 이러한 문제 의식에서 출발해 기획되었다. 인문학적 훈련이 되어 있지 않으면 어떠한 새로운 사태를 만났을 때 좋다’ ‘나쁘다’ ‘마음에 든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같은 정치적인판단을 하게 된다. 이것은 자기가 이미 가지고 있는 신념이나 생각을 가지고 사태를 판단하는 방식이다. 이런 성향 때문에 전개되는 상황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를 중심으로 하는 인문학적 통찰이 필요하다. , 세상의 변화에 의문을 품고, 질문할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 공부를 많이 해야지만 질문이 생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질문은 우리 삶의 아주 가까운 곳에서부터 시작된다.

 

가령, 여러분이 현재 일주일에 만 원의 용돈을 받는다고 해 봅시다. 그런데 다음 주부터는 일주일에 오만 원의 용돈을 받는다면 어떨까요? 만 원을 받을 때보다 몇 배는 신이 나겠지요? 그럼, 다음 주부터 백만 원의 용돈을 받는다면 또 어떨까요? 몇 십 배 더 신날까요, 아니면 조금 부담스러울까요?

 

《지금 이 순간 청소년 인문학》의 한 챕터인 <행복-, 지금 행복하니?>의 일부이다. 내가 받는 용돈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해 욕망과 행복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렇듯, 이 책은 내 삶의 아주 작은 부분에서 시작해 크게 사고할 수 있도록 계속해서 질문하고 사고를 이어갈 수 있도록 돕는다.

스마트폰 열 대를 가지면 열 배로 행복할까요?’, ‘여러분은 버스나 지하철에서 노약자에게 자리를 잘 양보하는 편인가요?’, ‘사람들은 왜 자유를 말할까요?’, ‘사랑하니까 구속한다고요?’ 등 한 번쯤 고민해 봄직한 질문을 통해 현재 자신의 모습과 지금 시대를 들여다보게 한다. 그리고 수많은 선인들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상황을 빗대어 생각해 보게 한다.

이 책을 통해 우리 청소년들이 자기 자신을 제대로 알고, 자기에게 부여된 고유한 능력을 창조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더불어 지금을 즐기면서 행복하게 사는 길을 탐구할 수 있을 것이다. 

 

 

 

최진석 교수와 서강대학교 연구진의 강연에서 시작된 책

 

《지금 이 순간 청소년 인문학》의 시작은 서강대학교 철학과 최진석 교수와 후학인 조성환 교수, 이임찬 교수, 김재익 박사의 강연이었다. 어린이 청소년을 위한 인문학 교실을 개최한 후, 강연했던 내용과 참석한 학생들과의 토론을 토대로 더 많은 주제를 선정, 이야기를 덧붙여 집필했다.

최진석 교수의 머리말(추천의 말)로 시작해 인문학 연구자 세 명이 각기 다른 주제로 총 여덟 개의 이야기를 담았다. 오랫동안 인문학을 연구해 온 학자들답게, 강의하듯 편안하게 이야기를 풀어냈다.

 

잠시만 눈을 감고 생명이란 무엇인지생각해 봅시다.

어때요? 어떤 대답거리가 떠올랐나요? 아니면 그냥 막막하기만 한가요?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생명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합니다. ‘생명의 소중함’, ‘생명의 존엄성등의 말을 들은 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생명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니 막막하기만 하지요? 당연한 일입니다. 사실 현재까지 어떤 과학자나 철학자도 생명을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생명에 대해 막막함을 느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93, <생명, 살아 있다는 것> 중에서

 

인문학은 어려운 학문이 아니다. 어렵게 느끼도록 만들어져 있을 뿐이다.”

인문학 교실강연 당시 최진석 교수가 강조했던 부분이다. 이 책은 청소년을 위한 인문학이지만, 자녀를 둔 부모, 선생님, 인문학이 어렵고 멀게 느껴지는 성인에게도 다양한 생각거리를 제공한다. 이 책을 통해 인문학의 진수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차례

 

추천의 말_ 인문학이란 무엇인가? (최진석)

 

1부     나를 알아 가기

 

행복_, 지금 행복하니? (이임찬)

자유_, 지금 자유롭니? (김재익)

마음_지금 너의 마음은? (김재익)

생명_살아 있다는 것 (이임찬)

 

2부     세상과 마주하기

 

사랑_관계를 유지하는 힘 (이임찬)

_어떤 꿈을 꾸어야 할까? (조성환)

리더_여러분은 어떤 리더? (조성환)

공공_어떤 사회가 바람직한 사회인가? (조성환)

 

 

 

추천사

 

창의적인 사람, 독창적인 사람, 성공하는 사람은 바로 자기가 하고 싶은 것, 자기가 좋아하는 것, 자기가 욕망하는 것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좋아하는을 추구하면 일반적으로 따르는 기준이나 계산 또는 표준 등을 벗어나게 됩니다. 누구나 숭상하는 신념을 따르지도 않습니다. 통념을 벗어날 수 있습니다. 상식을 초월할 수 있습니다. 자신만의 욕망에 집중하면 새로운 세계가 열리게 됩니다. 자기 내면에 비밀스럽게 자리 잡고 있는 창조적 충동에 따르는 사람은 우리가운데 한 명이 아니라 고유한 그 사람으로 살고 있습니다.

인문학은 자기로 사는 법을 알려 주는 지침서와 같습니다. 인문학을 하게 되면 누군가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고유한 영역을 개척하게 됩니다. 자기가 인생의 중심이 되고 세상의 중심에 서게 됩니다. 자기에게 부여된 고유한 능력을 가장 창조적으로 사용하게 됩니다. 여기에서 바로 행복이 주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인문학은 행복하게 사는 길에 대한 탐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여러분도 한번 행복한 인문학의 세계에 빠져 보지 않으렵니까?   

- 최진석(서강대학교 철학과 교수)

 

 

 

책 속으로

 

 

여러분은 오늘 먹은 아침 반찬을 기억하나요? 낮에는 누구와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나요? 저녁에는 무엇을 먹을지 생각해 보았나요? 혹시 이런 일들이 대수롭지 않은 사소한 일이라고 생각하나요? 그렇다면, 여러분이 좋아하는 영화는 무엇인가요? 여러분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노래는 무엇인가요? 엄마가 좋아하시는 색깔은 무엇인가요?

우리는 내일을 위해, 목표를 위해, 성공을 위해 살아갑니다. 하지만 내일이라는 이유로, 목표라는 이유로 그리고 성공이라는 이유로 오늘을,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을 사소하게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가요? 하지만 오늘을 살고 있는 여러분에게 일분일초도 사소한 것은 없습니다. 순간순간의 생각마저도 말이지요. 왜냐하면 순간순간의 생각이 모여 자신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앞에서 말한 건강하고 비옥한 마음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장자가 말한 이상적인 인간, 즉 참인간인 진인眞人은 이러한 마음을 지녔습니다.

_84~85, 김재익, <마음_지금 너의 마음은?> 중에서

 

 

이제 여러분에게 마지막 질문을 해야겠습니다. “당신은 지금 살아 있나요?” 또 싱거운 질문을 했나요? 지금까지 우리가 함께 나눈 이야기를 되새기며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세요. 과연 자신이 지금 살아 있는지 말입니다.

살아 있다는 것은 욕망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지금 살아 있나요?”라는 질문을지금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며 살고 있나요?”라고 바꿀 수 있습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물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 자유로운가요?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있나요? 무언가 이루려고 애쓰고 있나요? 사랑하고 있나요? 행복한가요?”

앞에서 보았던 자화자의 말을 떠올려 보세요. 그는 생명의 욕망이 억눌린 삶은 죽음보다 못하다고 했습니다. 패트릭 헨리의 말을 되돌아보세요. 그는 자유가 없는 삶이라면 차라리 죽음을 달라고 했습니다. (중략)

생명은 단순히 숨을 쉬고 있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루하루가 만족스럽지 않다면, 왜 그런지 이유를 찾아야 합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실현하려 애써야 합니다. 그렇게 이유를 찾고 좋아하는 것을 하려는 사람의 마음은 살아 있는 마음입니다. 그런 사람이 진정으로 살아 있는 사람입니다. 생명의 불꽃은 뭔가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살아나기 때문입니다.

_117~119, 이임찬, <생명_살아 있다는 것> 중에서

 

 

여기에 나오는 애태타라는 남자는 요즘으로 말하면 아무런스펙도 없는 사람입니다. 특별히 말을 잘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아는 것이 많은 것도 아닙니다. 영화배우처럼 잘생긴 것도 아니고, 특별히 자기주장을 하지도 않습니다. 그냥 남의 말을 잘 들어 주고 남들과 잘 어울릴 뿐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를 몹시 좋아합니다. 왜일까요?

《장자》에허심虛心응물應物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허심마음을 비운다는 뜻이고, ‘응물외물에 응한다는 뜻입니다. ‘외물자신을 제외한 모든 것을 의미합니다. 좁게는 마주하고 있는 상대방에서 넓게는 세상 전체까지를 가리킵니다. 허심은 응물을 하는 마음가짐에 해당합니다. 애태타는 허심의 상태로 사람들을 대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허심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세상을 대할 때는 누구나 자기의 생각과 입장을 갖고 대합니다. 가령 부모들은 자식을 대할 때 대개우리 애가 공부를 잘했으면……하는 일정한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그 마음이 지나치고 지속되면성심成心’, 굳어진 마음이 됩니다. 이 굳어진 마음으로 자식을 바라보면 자식이사람이 아닌공부점수로만 보이게 됩니다. 자식의 진정한 장점이나 재능은 안 보이게 되지요. 그래서 자식이 성적이 오르면 기뻐하고, 성적이 떨어지면 슬퍼하게 됩니다. 성적이 자신의 행복이자 자식의 미래라고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중략)

반면에허심은 세상을 대할 때 아무런 기준이나 선입견을 갖지 않고 대하는 태도를 말합니다. 유방의 예를 들면, 아랫사람의 신분이나 지위 또는 외모는 따지지 않고 오로지능력하나만 보는 태도와 유사합니다. 우리는 보통 사람들을 대할 때 그 사람의 내적인 진실함보다는 외적인 지위나 학력 또는 재산 등을 따집니다. 특히 요즘처럼 모든 것을으로 환산해서 생각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특히 더 심하지요. 그런데 애태타와 같은 태도에는 비록 사람들을 일시에 빨아들이는 흡인력은 없을지 몰라도, 모든 이들을 받아들이는 무한한 포용력이 있습니다.

_186~187, 조성환, <리더_여러분은 어떤 리더?> 중에서

 

 

 

 

지은이 소개

 

 조성환

서강대학교 수학과와 철학과 대학원에서 학사와 석사 과정을 마치고, 일본 와세다대학교를 거쳐 서강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동아시아의 맥락 속에서 주체적인 한국사상사를 저술하는 문제에 몰두하고 있다.

현재 원광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 전임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며, 삼성디자인경영연구회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장자》, 《세종 리더십의 핵심 가치》(공저)가 있고, 《상생과 화해의 공공철학》을 우리말로 옮겼다.

 

 이임찬

서강대학교 철학과에서 학부와 석사를 마치고, 중국 북경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 고대의 노자, 장자, 황로학을 중심으로 제자백가의 사상을 연구하고 있으며, 현재 서강대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고 있다. 《현대 중국 철학》(공역), 《직하학 연구》를 우리말로 옮겼다.

 

 김재익

서강대학교 철학과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현재는 ()한국형리더십개발원의 〈리더십에세이〉의 편집장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여주대학교 세종리더십연구소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최진석

서강대학교 철학과에서 학사와 석사 과정을 마치고, 중국 흑룡강대학교를 거쳐 북경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삶의 지혜와 인문학적 통찰을 담은 강연 및 저술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다.

현재 서강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인문·과학·예술 분야 국내 최고 석학들이 모인 인재육성기관건명원建明苑의 초대 원장을 맡고 있다.

지은 책으로 《생각하는 힘 노자 인문학》, 《저것을 버리고 이것을》, 《인간이 그리는 무늬》 《노자의 목소리로 듣는 도덕경》 등이 있고, 《노자의소》(공역), 《중국사상 명강의》, 《장자철학》, 《노장신론》 등의 책을 해설하고 우리말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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