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심의 역습>을 통해 전하는

'대한민국 표심' 여섯 번째 이야기

 

" 정치가 만들어낸 이념의 양극화 "

 

 

 

한국 유권자들은 진보와 보수 스펙트럼 상에서 어떻게 분포할까?

중도에서 진보로 기울었을까, 보수로 기울었을까?

혹은 중도로 향하고 있을까, 양극단으로 쏠리는 경향을 띠고 있을까?

 

 

대한민국은 점점 보수화되고 있다 

- 중도진보에서 중도로, 중도보수에서 극단적 보수로 

 

그동안 실시된 여러 조사들을 보면 우리나라 유권자의 이념 분포는 좌우로 아주 조금씩 기울긴 했지만 대체로 종 모양의 정상 분포로 인식되었다. 유권자의 이념 분포가 정상곡선을 그리고 있는 조건에서 여야 정당들은 중도층의 지지를 얻기 위해 이념적 혹은 정책적 차이를 좁히고, 정부도 사회통합적인 방향으로 국정을 운영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지난 20년 동안의 정치를 돌이켜 보면, 진보정권의 등장과 보수정권으로의 교체를 통해 정당 간 정책적, 이념적 경쟁이 오히려 심해지고, 정부 또한 자신들의 이념 성향을 강하게 드러냈다. 대북 정책과 정치개혁을 둘러싼 갈등뿐만 아니라 성장 대 복지 혹은 선별적 복지 대 보편적 복지와 같은 사회경제적 이슈에서도 정당 간 입장 차이가 뚜렷해진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정당과 정치인들은 유권자의 이념 분포를 무시하는 걸까? 아니면 한국 유권자들이 그리는 이념 분포가 종 모양의 정상곡선과 다른 걸까? 그동안 여론조사에서는 0에서 10까지의 11점 척도에서 응답자가 자신의 진보 혹은 보수 이념의 위치를 설정하도록 했다. 응답자들은 진보와 보수 이념의 기준이 모호해 무난한 중간 점수인 5점을 택하는 경향이 있었다(이갑윤·이현우, 2008). 그러나 조사에서 일관되게 나타나는 이념 분포의 패턴을 보면, 유권자가 중도 5점의 위치에 가장 많이 포진해 있지만 종 모양과는 달리 5점에서 1점씩 적거나 많은 4점과 6점보다 3점과 7점의 위치에 훨씬 더 몰려 있었다. 이는 우리나라 유권자들이 단순히 중도화의 모습을 띠는 것이 아니라 방향에 있어서 진보나 보수 쪽을 지향하고 있음을 말해주는지도 모른다.

2012년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가 실시한 사회갈등조사와 2015년 내일신문과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가 수행한 ‘유권자 지도―이념 조사’의 결과를 비교해보면, 결과로 나타난 두 그래프 모두 정상곡선라고 할 만한 종 모양은 아니다. 유권자들이 중도로 볼 수 있는 5점 위치에 가장 많이 몰려 있지만, 두 그래프 모두 5점 바로 옆의 4점과 6점보다 3점과 7점에 더 많이 자신의 이념 위치를 설정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진보와 보수라는 추상적 개념의 조사에서 응답자들은 무난해 보이는 5점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응답자들이 4점과 6점보다 중도에서 더 먼 3점과 7점에 자신의 위치를 놓는 것은 스스로를 진보와 보수 어느 한편에 있음을 분명히 나타내는 태도라고 볼 수 있다. 이념 성향이 강하지 않은 유권자가 주어진 진보와 보수의 스펙트럼에서 자신의 이념 성향을 드러내는 최대한의 위치가 3점과 7점이라고 추정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 유권자들이 실제로는 보수와 진보로 나누어져 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여기서 또 하나 주목해야 할 점은 유권자들이 2012년과 2015년 사이에 더 보수화되었다는 사실이다. 유권자의 평균 이념 점수는 2012년 5.06에서 2015년 5.55로 약간 더 보수 쪽으로 기울었다. 두 곡선을 비교해보면 
4점과 3점에 모여 있는 비율이 2012년보다 2015년에 약 5%p씩 줄어든 대신, 중도인 5점의 비율은 더 늘어났다. 2012년에 자신을 진보라고 설정했던 유권자들이 중도로 많이 옮겨간 것이다.
한편 2015년에 나타난 보수 영역의 곡선은 더욱 흥미롭다. 6점과 7점의 비율이 2012년보다 많이 줄어든 반면, 8점 이상의 지점에서 유권자 비율이 늘어났다. 특히 보수의 극단값인 10점은 2012년의 1.7%에서 9.8%로 늘었다. 우리나라 유권자들이 박근혜 정부 3년간 중도진보에서 중도로, 중도보수에서 극단적 보수로 이동했음을 보여준다. 달리 보면 이 그래프 상으로는 이념의 양극화 현상보다는 국민들의 전반적인 보수화 가운데 보수의 극단화가 일어났다고 볼 수 있다.

 

 

허약해진 진보 진영, 빛나는 집권 프리미엄, 종편 방송의 영향...


그러면 우리나라 국민들이 실제로 보수화되어서 이런 이념 분포를 보이는 걸까? 국민의 이념 성향이 보수화되었다는 것은 정책적 지향이 진보에서 보수로 이동한 것을 말한다. 그러나 앞에서 살펴본 이념 태도(종합된 정책 태도)의 분포를 보면 우리 국민들의 이념 분포는 종 모양을 그리고 있다. 주관적 이념 성향의 분포가 종 모양과 다르게 나타나는 것은 국민들이 주관적 이념을 설정하는 과정에서 정책적 내용보다는 선호하는 정치인이나 정당에 강하게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유권자의 이념 분포가 보수 쪽으로 기운 것은 보수진영에 비해 진보진영이 허약해졌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은 영남의 든든한 지지를 받으면서 적어도 최근까지는 40% 이상의 지지를 받는 대통령을 가진 반면, 민주당 계열 야당은 리더십을 구축하지 못하고 분열 양상을 지속해왔다. ‘집권 프리미엄’이기는 하지만 정책 담론과 의제 설정은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이 주도했으며, 야당은 박근혜 정부의 정책적 실패를 자신들의 기회로 돌려세우지 못했다. 경제적인 성과가 없는 것이 이 정부의 취약점인데 야당은 이를 정면에서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능력을 보이지 못했다.
국민의 보수화와 더불어 보수의 극단화가 이루어진 데에는 이명박 정부 시기에 설립되어 이어져온 종편 방송의 뉴스 프로그램과 정치 좌담의 영향도 한몫했다. 낮은 시청률 속에서 방송되는 종편 프로그램이 중도적인 사람들을 보수화시키는 데 크게 작용하지는 않았겠지만, 낮 시간에 그 방송에 노출되는 노장층의 보수성을 더욱 강경해지게 했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 3년, 커지는 이념의 양극화

 

이번에는 국민의 이념 양극화를 다른 방법으로 확인해보자. 이념집단 간의 이념 평균점수를 계산해서 진보와 보수 간의 거리를 측정하고 2012년과 2015년을 비교했다. 그 결과 진보층은 11점 척도에서 자신의 이념 위치를 0~4점이라고 대답한 응답자이며, 보수층은 6~10점이라고 대답한 응답자다. 2012년 조사 당시 진보층의 평균점수는 2.96, 보수층의 평균점수는 7.11로 두 진영의 거리는 4.15였다. 하지만 3년 뒤 진보층은 2.72, 보수층은 7.99로 두 진영의 격차가 5.27로 크게 벌어졌다. 이로써 국민들 사이에서 이념의 양극화가 어느 정도 현상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두 시기를 놓고 세대별 진보층과 보수층의 이념 평균점수 격차를 비교해보았다. IT세대는 2012년에 4.24를 기록했지만 2015년에는 4.68로 늘어났다. 진보정권세대는 2012년에 4.01이었으나 2015년에는 4.93으로 커졌다. 민주화세대 역시 2012년에 이념 차이가 3.90이었으나 2015년에는 5.13으로 늘었다. 개발독재세대도 2012년에 4.22였으나 2015년에는 무려 6.06으로 커졌다.

세대별로 진보층과 보수층의 이념 점수 차이가 2012년보다 2015년에 전반적으로 커진 것은 그만큼 지난 3년간 이념 갈등이 심해졌음을 의미한다. 대통령도 정당도 기회만 있으면 국민통합을 외쳤지만 그것은 립 서비스였고, 실제로는 국민들을 갈라놓는 갈등 사안을 제기하고 이념 갈등을 조장했다. 최근 박근혜 정부가 추진한 국사 교과서 국정화나 한일 간 위안부 문제 타협 등이 대표적인 예다. 대북 문제나 일본과의 문제 등 민족적이고 외교안보적인 사안이 여야 정당들 사이에 쟁점으로 부각되면 통상 나이 많은 세대와 젊은 세대 사이의 갈등이 격화된다.
지난 3년간 각 이념집단이 느낀 상대 집단에 대한 거리감을 비교해보면, 진보층의 보수층에 대한 거리감은 2012년 6.61에서 2015년 6.74로 0.13점밖에 증가하지 않은 반면, 보수층의 진보층에 대한 거리감은 2012년 5.93에서 2015년 6.86으로 0.93점 더 멀어졌다. 두 진영 모두 2012년에 비해 상대 이념을 더 멀게 느끼고 있었지만, 보수층이 진보층에 대해 느끼는 거리감이 훨씬 커졌음을 말해준다. 두 보수정권을 거치면서 진보층의 보수층에 대한 거리감이 유지된 한편, 보수층의 진보층에 대한 자기 정체성이 강해졌음을 알 수 있다.
주목해야 할 것은 중도층의 변화다. 이들이 느끼는 진보층에 대한 거리감은 2012년 4.97에서 2015년 5.30으로 0.33점 멀어졌다. 반면 보수층에
대한 거리감은 2012년 5.37에서 2015년 5.25로 오히려 0.12점 가까워졌다. 2012년 조사 당시 중도층은 진보층에 어느 정도 친밀감을 느끼고 있었으나(5 이하는 친밀함), 지금은 오히려 보수층보다 더 멀게 느끼고 있는 것이다.
중도층의 진보층에 대한 거리감이 커지고 있다는 사실은 민주당 계열 야당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김형식 전 서울시의원 살인교사 사건, 한명숙 전 국무총리 재판, 운동권 출신 의원들의 추태, 끊이지 않는 야당 내부의 계파 싸움이 진보에 대한 거리감을 증가시키고 있다. 이는 지난 재보궐선거의 결과가 말해주듯이 야당의 2016년 총선 전망이 어둡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권 차원의 이념 동원이 심각하다

 

박근혜 정부 3년 사이에 나타난 이러한 이념의 양극화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앞에서 언급했듯이, 이념의 양극화는 사회경제적인 조건 탓일 수 있다. 지속적인 저성장과 구조화된 경제 양극화가 국민들의 이념 분포를 양쪽으로 끌어당겼을 수 있다. 경기침체 상황에서 복지 확대를 요구하는 사람과 경제성장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확연히 나눠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성장과 경제 양극화는 노무현 정부 때부터 시작되었다. 사회경제적 접근은 이명박 정부 후반에 두드러지지 않았던 이념의 양극화가 왜 박근혜 정부 3년 동안에 유독 나타나고 있는지를 설명하지 못한다.
최근 이념의 양극화가 두드러지는 이유는 정권 차원의 이념 동원이 심각했기 때문이다. 국가정보원의 대선 개입 및 민간인 사찰 의혹, 통합진보당 해산, 대북 전단지 살포, 노동개혁 논쟁부터 국사 교과서 국정화에 이르기까지 이념적으로 찬반을 극명하게 가르는 사건들이 이념 쏠림 현상을 더 부추겼다. 정부여당은 국정운영의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일관되게 진보를 공격하면서 보수진영을 동원하는 전략을 폈고, 그 반작용으로 진보진영도 더욱 극단적인 방향으로 응집해왔다.
하지만 심화되는 이념의 양극화로 사회통합은 더욱 어려워졌다. 진보와 보수의 두 진영이 극단화되면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할 사안조차 비타협적 충돌로 진행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세월호 참사나 메르스 사태 당시에도 재난 대응 시 보여야 할 실용적 접근보다는 진보와 보수의 진영 논리로 사태를 해석하고 갈등을 조장했던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재난과 같은 국민의 안전 문제도 이러할진대 이념적 대립이 불가피한 재벌개혁과 노동개혁의 앞날은 더욱 불투명하다.

 

_ 4장 "정치가 만들어낸 이념의 양극화" 중에서

 

 

 

* <표심의 역습>을 통해 전하는 '대한민국 표심' 이야기는 이번으로 마칩니다. 

 

 

 

 

그동안 쉽게 넘겨짚고 대충 흘려들은,

우리 자신도 몰랐던 이 시대의 우리를 마주하다

 

"아직도 과거의 이미지로만 국민을 보려 하는가?"

 

 

 

 

 

<표심의 역습>

이현우, 이지호, 서복경, 남봉우, 성홍식 공저

책담 | 2016년 2월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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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그대를 위한 세상의 모든 이야기 책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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